시간에 따른 정의와 도덕의 기준

Posted by on Sunday, July 12, 2020 Tags: philosophy   3 minute read

Jonh Lee님과 마취중진담님의 페이스북 글의 글에 좋은 생각의 관점이 있어 정리해본다.

시간에 따른 정의와 도덕의 기준은 다르다.

세종도 현대 기준으로는 독재자에 불과하다. 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은 세종을 현대식 기준으로 평가하기에 무리가 있다고 동의한다. 한편 박정희는 미개한 조선에서 선진도상국 대한민국으로 넘어가는 바로 그 과도기에 위치한다. 아무리 좋은 정치를 펴더라도 2018년에 독재적 방식을 추구하는 정치가를 인정할 국민은 거의 없다. 그러나 박정희가 근대 국가의 마지막 다크나이트로서 독재국가의 잠재력을 모두 사용한 마지막 왕이느냐, 현대 민주국가에서 단지 부수적인 프리퀄일 뿐인 악당 대통령이느냐의 관점이 근본적 차이이지 않을까? 물론 객관적 관점에서 실질적으로는 원시적이지만 형식적으로는 온전한 민주정권이 직전에 존재하기는 했으므로, 그 의미를 어디까지 두느냐의 해석차는 개인의 몫이다.

이 글을 읽고나니 박정희 전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극단적으로 나뉘는 얘기가 납득이 간다.

최근 박원순 시장이 미투폭로를 당하고 자살한 사건과 관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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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에 관노와 수차례 잠자리에 들었다는 이순신이 존경받지 못할 인물인가?

라는 반박 의견이 돌았는데

시간에 따른 정의와 도덕의 기준이 다르다는 공식이 성립한다면 위 예는 적절치 못한 예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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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 재밌는 예로는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

이 동화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그 시대에는 문제 없었으나 현재 시점에서 이 동화를 보면 범죄소지가 다분히 있어보인다.

지금이라면 나중에 선녀가 사실을 알고 이혼소송 걸수도 있을 문제.

그렇다면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변하지 않는 정의와 도덕은 없는가?

이 글을 읽고 궁금했던점이 시간에 따르지 않고 변하지 않는 정의와 도덕은 없을까? 였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살인을 해서는 안된다.

석기시대에서는 생존을 위한 살인이 당연시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시대에는 아예 도덕이라는 관념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조금 극단적으로 가보자.

출산한 아이를 죽여서는 안된다.

적어도 포유류가 존재한 시점이라면 모성애라는것을 가지고 있을테니 존재했을 정의와 도덕이 아니었을까?

모성애가 없는 시점이라면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인간이 아닌 동물에게 정의와 도덕을 정의할 수 있는가?의 문제도 있겠다.

인간에 가까운 동물에게만 기준을 좁힌다면 출산한 아이를 죽여서는 안된다는 불변한 정의와 도덕은 아니었을까.

시간에 따른 정의와 도덕의 기준은 다르다. 는 절대적인가?

시간에 따른 정의와 도덕의 기준은 다르다. 는 반박할 수 없는 공식인가?

굉장히 보편적으로 통용가능한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시간에 따른 정의와 도덕의 기준은 다르다. -> 그러니 과거의 일은 좋게 넘어가자

이런식의 논리전개가 되면 과거미화에 사용될 소지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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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화한것을 그 시대엔 마..! 다 약한나라 식민지 하고 그랬어…마!! 이런식의 논리가 통용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필자의 시대로 예를들면 문희준 사건(?)이 있다.

현재 아이돌이 랩을 하면 정통랩으로 인정안해주는것처럼(실력자 제외) 아이돌이 락을 한다는것에 어떤 벽 같은게 존재했는데 일련의 발언들로 엄청난 안티를 양산해 문희준씨에게 엄청난 악플의 쓰나미가 몰아쳤던것으로 기억한다.

그 쓰나미에 쓸려 필자도 친구들과 “뷁” 이라는 단어를 남발했는데

세이클럽 타키,지니,버디버디 아이디에 이 들어가는게 일종의 밈이었었다.

아마도 당시에는 문희준씨에게 큰 상처가 되었을것이다.

이러한 뷁 남발이 그 당시에 다들 그렇게 쓰고 그랬어라고 넘어가야 하는게 맞는가?

라는 의문이 든다.

최소한 내가 도덕적으로 잘못된 행동을 했었어 라고 반성해야하는게 아름다운 사회이진 않을까..